평택시 남부 농촌지역이었던 동삭동은 2017년 이후 모산근린공원을 중심으로 동북쪽에 평택센트럴자이아파트, 서북쪽에 더샵지제역센트럴파크아파트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평택의 새로운 신도시로 발전하게 됐다.왼쪽 사진의 2001년 10월 항공촬영 당시만 해도 정면에 삼익사이버아파트와 2차선 도로가 보인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좌측에 동삭현대아파트가 먼저 들어섰다. 이후 이안아파트가 준공 이후 한창 개발이 중단됐다가 2017년 이후부터 과수원과 농경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사진 정면에 보이는 삼익사이버아파트 뒷면 과수원과 논,
“평생평소로컬푸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평택에 정착하다유광호(64세) 평생평소로컬푸드 대표는 1979년 스무 살에 평택시 오성면 길음리에 정착했다.“고향은 경기도 과천인데, 집과 논밭이 모두 서울대공원 부지에 강제 수용되면서 부모님과 함께 평택으로 이주했어요. 처음 왔을 당시 길음리는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고, 대부분 비포장도로인 데다 굉장히 삭막했죠”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자랐지만, 본인이 농사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부모님은 쌀농사를 지으셨는데, 논이 넓지 않아 수익이
“평택농악 발전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우여곡절의 유년기김용래(84세) 평택농악 보유자는 천안군 화성읍 쌍용동 299번지에서 삼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네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읜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일찍이 힘겨운 삶을 마주해야 했다.“아버지는 사금 채취장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이 사실도 생전 아버지와 알고 지냈던 이돌천 아저씨에게 전해 들었죠”강릉김씨 한 계파의 6대 종손으로, 전주이씨 집안과 마을의 중심을 이뤘던 그의 집안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원래 집터도 넓고 작은 논도
“교통사고 없는 안전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장녀로서의 책임감김정숙(57세) 평택경찰서 송탄모범운전자회장은 2남 2녀 중 둘째, 장녀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시절부터 살림을 도맡았다.“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일찍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때부터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셨고, 저는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 형제들의 도시락을 챙겨야 했죠”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천성이 긍정적이고 밝았던 그는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
“바나나 하면 떠오르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다정동욱(43세) 청휴원 대표는 집안 대대로 살아온 평택시 오성면 일대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그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농기계도 없이 드넓은 논밭을 일궈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길음리에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었다고 해요. 부모님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농사를 짓고 저와 누나를 키우셨죠”정동욱 대표는 초등학생 시절 가족과 함께 교포리에 정착했고,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에 입학한 뒤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당시 한우를 키우면 받을 수 있는
“지속해서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학생운동에 투신하다박호림(50세) 평택시공익활동지원센터 팀장은 과거 드넓은 배 밭이 펼쳐진 용이동 일대에서 성장했다.“아버지는 계속 일간지를 구독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도 신문을 많이 읽었어요. 또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아버지를 따라 동대문까지 가서 중고서적을 사 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운동권으로 활동한 네 살 위 큰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진보적 학풍의 한신대학교에 진학해 신학을 전공했다.“중고교 시절 몰래 형의 책을 읽기도 했고, 고교
“시원섭섭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인생 3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송탄에 정착하다정서용(83세) 광안당안경원 대표는 1950년 6·25전쟁이 시작되자 고향 서울을 떠나 피란 생활을 시작했다.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인민군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가댁이 있는 경기도 광주로 향한 그는 형과 함께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어머니는 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형과 함께 피란을 떠났어요. 전쟁으로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정서용 대표는 1963년 형의 부름을 받아 송탄으로 왔다. 그의 형은 앞서 1960년 K-
“축산업을 기반으로 한 치유농업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코딩 1세대가 되다차인혜(44세) 한국여성농업인평택시연합회 사무국장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평택시 진위면 마산1리로 이주했다.도시에서 직장인의 삶을 살아오던 부모님은 과감히 귀농을 선택했고, 80년대 후반부터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그는 부모님을 닮아 리더십이 탁월했다.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도맡았다.차인혜 사무국장은 학창 시절 농업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대학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했지만, 2년 만에 그만뒀다. 적성에 맞지 않았고, 시대적으로 취업에 대한
“교육복지 시스템이 잘 정착하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교사를 꿈꾸다박은경(50세) 경기도평택교육지원청 교육복지조정자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나고 자란 고향 여수에는 굴지의 석유화학회사가 입주한 국가산업단지가 있기 때문이다.“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화학을 전공하면 취업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수에서는 화학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였죠”박은경 교육복지조정자는 대학 진학 후에도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교직 이수 과정을 병행했다.“진로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교직 이수 과정을 마치고도
“평택신협을 전국 1위 신협으로 만들겠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다박함균(66세) 평택신협 이사장은 안성 공도에서 태어났지만, 평택 생활권에서 성장했다.“공도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통복동에 부모님 건물이 있었는데, 덕분에 평택 생활권이 익숙한 상태였죠”박함균 이사장은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상경해 청계천 일대 기술학원에 다녔다.“대학 진학보다 자격증을 취득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집안의 장남으로서 빨리 돈을 벌고 싶었죠. 더 높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상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연극치료를 공부하다김가영(49세) 빅마인드상담센터장은 어린 시절 미술에 두각을 보였고, 화가가 되는 것이 인생의 첫 번째 목표였다.그는 바라고 바라던 미대에 진학했지만,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면서 학업을 모두 마칠 수 없었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곧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미용실 원장님 추천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프로필을 제출했습니다. 우연히 광고모델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죠”김가영 센터장은 진로, 농협, 재능교육 등 다양한 광고에 등장했다. 또 자연스럽게 배우 생활을 시작
“제 목공체험장을 6차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명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천주교 신부를 꿈꾸다박병욱(49세) 우드팜스토리 대표는 어린 시절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신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왔어요. 아버지는 제가 신부가 되기를 원하셨죠. 어려운 환경 탓에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인 제가 이뤄내길 바라셨습니다. 평택성당 복사단으로 뽑혔을 당시에는 아버지께 첫 선물로 손목시계를 받기도 했죠”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박병욱 대표는 성직자의
“평택을 대표하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라진 고향 갈평마을조성재(48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평택지부장의 고향은 도시 개발로 사라진 서정동 갈평葛平 마을이다.“갈평마을에는 풍양 조씨 집성촌이 있었어요. 동네에 같은 집안 분들이 많았죠. 지금은 고덕국제신도시에 수용돼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골목대장을 맡을 만큼 개구쟁이였던 그는 중고교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사춘기가 심하게 온 편이어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체대에 들어가기 위해 검도를
“음악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싶습니다” 성악에 두각을 보이다김도완(52세) 평택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평택에 정착했다.그는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일을 계기로 자신의 노래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인지했다.“음악에 관심이 크진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자주 들었을 뿐이었죠”김도완 지휘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출전한 성악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음대 진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평택에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를 잘 끌어 나가고 싶습니다” 교사가 되다제주도가 고향인 장일미(65세)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장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태어났다.부모님은 일자리가 부족한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서 공장을 운영했고,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제주도에서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당시 용산구 보광동에 정착했는데, 부모님은 아직도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죠”중고교 시절 수학에 소질을 보인 장일미 지부장은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중 이왕이면 좋아하고 잘하는 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수학을
“학습자가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부산 소녀, 평택에 정착하다박경민(45세) 인트리 대표는 어린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립심 강한 소녀로 성장했다.“부모님은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과 인근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굉장히 바쁘셨죠. 게다가 저는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독립성이 강했습니다”그는 학창 시절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모두 좋아하는 가수가 매개체였다.“미국의 보이그룹 ‘뉴키즈온더블록’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가사를 해석하며 영어
“농업인을 대변하고 돕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고향동네 현덕면 삼정리세 개의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 삼정리. 정정호(57세) 평택시농업인단체협의회장이 60년 가까이 지켜온 고향동네다.“현덕면 삼정리에는 3개 마을이 있는데, 제가 살고 있는 삼정1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여서 대삼정마을로 불려요.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방앗간을 시작하셨고, 지금은 저희 아이들이 대를 이어 4대째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죠”흔히 방앗간을 운영하면 여유 있는 집안이라고 했지만, 정정호 회장은 ‘고생’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아버지 대에 들어서면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 싶습니다” 사학을 전공하다장연환(58세) 효명고등학교 교사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아주 깊은 산골짜기는 아니었지만,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농촌이었어요. 물이 풍족해 가뭄 걱정이 없는 곳이었죠”농사를 지으면서도 교육열이 남달랐던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그와 남동생을 유학길에 오르게 했다.“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상경했습니다. 저와 남동생, 할머니 이렇게 세 식구가 서울 녹번동에 정착했죠. 갑작스럽게 떠난 유학길인 데다 주거환경도 열악했지만, 두렵다거나 당황스
“평택의 정체성을 품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발굴해 알리고 싶습니다” 역사를 전공하다황수근(38세) 평택문화원 학예연구사의 고향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의 한 산골짜기 마을이다.“버스가 하루에 단 3대만 들어올 정도로 외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병원이 아닌 시골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대부분 믿지 않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로 떠났지만, 방학이면 할머니집에 머물렀기에 제겐 익숙한 곳입니다”그는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책을 접했다.더욱이 역사 유적지가 인접한 성장 환경과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은
“진위면의 다양한 자원을 복원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진위면 지킴이안병무(63세) 연이랑명주랑 대표는 진위면 마산리에서 태어나 60여 년간 고향을 지켜왔다.“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고향에서 살아왔어요. 진위는 면 소재지인 봉남리 일대가 70년대 농지 정리 이후 거의 변화되지 않았을 만큼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죠”안병무 대표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교사가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었다.“그 시절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부분 선생님이나 농사꾼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