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섭섭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인생 3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송탄에 정착하다정서용(83세) 광안당안경원 대표는 1950년 6·25전쟁이 시작되자 고향 서울을 떠나 피란 생활을 시작했다.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인민군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가댁이 있는 경기도 광주로 향한 그는 형과 함께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어머니는 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형과 함께 피란을 떠났어요. 전쟁으로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정서용 대표는 1963년 형의 부름을 받아 송탄으로 왔다. 그의 형은 앞서 1960년 K-
“축산업을 기반으로 한 치유농업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코딩 1세대가 되다차인혜(44세) 한국여성농업인평택시연합회 사무국장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평택시 진위면 마산1리로 이주했다.도시에서 직장인의 삶을 살아오던 부모님은 과감히 귀농을 선택했고, 80년대 후반부터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그는 부모님을 닮아 리더십이 탁월했다.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도맡았다.차인혜 사무국장은 학창 시절 농업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대학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했지만, 2년 만에 그만뒀다. 적성에 맞지 않았고, 시대적으로 취업에 대한
“교육복지 시스템이 잘 정착하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교사를 꿈꾸다박은경(50세) 경기도평택교육지원청 교육복지조정자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나고 자란 고향 여수에는 굴지의 석유화학회사가 입주한 국가산업단지가 있기 때문이다.“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화학을 전공하면 취업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수에서는 화학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였죠”박은경 교육복지조정자는 대학 진학 후에도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교직 이수 과정을 병행했다.“진로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교직 이수 과정을 마치고도
“평택신협을 전국 1위 신협으로 만들겠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다박함균(66세) 평택신협 이사장은 안성 공도에서 태어났지만, 평택 생활권에서 성장했다.“공도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통복동에 부모님 건물이 있었는데, 덕분에 평택 생활권이 익숙한 상태였죠”박함균 이사장은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상경해 청계천 일대 기술학원에 다녔다.“대학 진학보다 자격증을 취득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집안의 장남으로서 빨리 돈을 벌고 싶었죠. 더 높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상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연극치료를 공부하다김가영(49세) 빅마인드상담센터장은 어린 시절 미술에 두각을 보였고, 화가가 되는 것이 인생의 첫 번째 목표였다.그는 바라고 바라던 미대에 진학했지만,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면서 학업을 모두 마칠 수 없었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곧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미용실 원장님 추천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프로필을 제출했습니다. 우연히 광고모델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죠”김가영 센터장은 진로, 농협, 재능교육 등 다양한 광고에 등장했다. 또 자연스럽게 배우 생활을 시작
“제 목공체험장을 6차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명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천주교 신부를 꿈꾸다박병욱(49세) 우드팜스토리 대표는 어린 시절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신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왔어요. 아버지는 제가 신부가 되기를 원하셨죠. 어려운 환경 탓에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인 제가 이뤄내길 바라셨습니다. 평택성당 복사단으로 뽑혔을 당시에는 아버지께 첫 선물로 손목시계를 받기도 했죠”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박병욱 대표는 성직자의
“평택을 대표하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라진 고향 갈평마을조성재(48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평택지부장의 고향은 도시 개발로 사라진 서정동 갈평葛平 마을이다.“갈평마을에는 풍양 조씨 집성촌이 있었어요. 동네에 같은 집안 분들이 많았죠. 지금은 고덕국제신도시에 수용돼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골목대장을 맡을 만큼 개구쟁이였던 그는 중고교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사춘기가 심하게 온 편이어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체대에 들어가기 위해 검도를
“음악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싶습니다” 성악에 두각을 보이다김도완(52세) 평택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평택에 정착했다.그는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일을 계기로 자신의 노래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인지했다.“음악에 관심이 크진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자주 들었을 뿐이었죠”김도완 지휘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출전한 성악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음대 진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평택에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를 잘 끌어 나가고 싶습니다” 교사가 되다제주도가 고향인 장일미(65세)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장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태어났다.부모님은 일자리가 부족한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서 공장을 운영했고,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제주도에서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당시 용산구 보광동에 정착했는데, 부모님은 아직도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죠”중고교 시절 수학에 소질을 보인 장일미 지부장은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중 이왕이면 좋아하고 잘하는 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수학을
“학습자가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부산 소녀, 평택에 정착하다박경민(45세) 인트리 대표는 어린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립심 강한 소녀로 성장했다.“부모님은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과 인근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굉장히 바쁘셨죠. 게다가 저는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독립성이 강했습니다”그는 학창 시절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모두 좋아하는 가수가 매개체였다.“미국의 보이그룹 ‘뉴키즈온더블록’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가사를 해석하며 영어
“농업인을 대변하고 돕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고향동네 현덕면 삼정리세 개의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 삼정리. 정정호(57세) 평택시농업인단체협의회장이 60년 가까이 지켜온 고향동네다.“현덕면 삼정리에는 3개 마을이 있는데, 제가 살고 있는 삼정1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여서 대삼정마을로 불려요.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방앗간을 시작하셨고, 지금은 저희 아이들이 대를 이어 4대째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죠”흔히 방앗간을 운영하면 여유 있는 집안이라고 했지만, 정정호 회장은 ‘고생’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아버지 대에 들어서면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 싶습니다” 사학을 전공하다장연환(58세) 효명고등학교 교사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아주 깊은 산골짜기는 아니었지만,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농촌이었어요. 물이 풍족해 가뭄 걱정이 없는 곳이었죠”농사를 지으면서도 교육열이 남달랐던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그와 남동생을 유학길에 오르게 했다.“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상경했습니다. 저와 남동생, 할머니 이렇게 세 식구가 서울 녹번동에 정착했죠. 갑작스럽게 떠난 유학길인 데다 주거환경도 열악했지만, 두렵다거나 당황스
“평택의 정체성을 품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발굴해 알리고 싶습니다” 역사를 전공하다황수근(38세) 평택문화원 학예연구사의 고향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의 한 산골짜기 마을이다.“버스가 하루에 단 3대만 들어올 정도로 외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병원이 아닌 시골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대부분 믿지 않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로 떠났지만, 방학이면 할머니집에 머물렀기에 제겐 익숙한 곳입니다”그는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책을 접했다.더욱이 역사 유적지가 인접한 성장 환경과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은
“진위면의 다양한 자원을 복원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진위면 지킴이안병무(63세) 연이랑명주랑 대표는 진위면 마산리에서 태어나 60여 년간 고향을 지켜왔다.“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고향에서 살아왔어요. 진위는 면 소재지인 봉남리 일대가 70년대 농지 정리 이후 거의 변화되지 않았을 만큼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죠”안병무 대표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교사가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었다.“그 시절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부분 선생님이나 농사꾼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되고
“새집 만들기로 지역사회와 상생·소통하고 싶습니다” 유통업계의 베테랑평택에서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있는 오수환(75세) 씨는 본래 서울에서 성장해 40여 년간 활약한 유통업계의 베테랑이다.외향적인 성격으로 학창 시절 반장이나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한 그는 국립부산수산대학교에 진학해 원양어선을 이끄는 선장이 되고자 했다.“사실 학창 시절 다른 큰 꿈은 없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제 소망이었죠. 그래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원양어선 선장인 친구의 형을 보며 선장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선장이 되기 위해
“천연염색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평택에 정착하다유학순(64세) 오색향기 대표는 학창 시절 교단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학업에 열중했다.“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 용인에서 수원여고로 진학할 수 있었고, 대학에도 갈 수 있었죠”청주사범대학교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한 유학순 대표는 잠시 교단에 서기도 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자 일찍이 다른 길을 모색했다.“역사교사의 경우 교단에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아 정식으로 발령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알아보던 중 시대가
“그래피티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거점을 조성하고 싶습니다” 그래피티에 빠져들다문무랑(38세) 바머스 그래피티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익숙했다.“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군이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자주 다녔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죠. 그 덕분인지 굉장히 외향적이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특히, 자동차를 좋아해 연습장은 항상 자동차 그림으로 가득했다.“초등학생 시절부터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평택의 자원봉사 생태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겠습니다” 감수성 넘치는 소녀손영희(63세) 평택시자원봉사센터장은 전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그는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했고, 사춘기에도 음악을 통해 위로받으며 성장했다.“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항상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망이 컸고 그중에서도 음악을 정말 많이 좋아했습니다. 특히, 팝송을 좋아해 영어 과목을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죠”책임감 있고 성실한 모범생이었던 손영희 센터장에게 음악과 영화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일탈이기도 했다.“당시 학생들
“권관리어촌계와 권관항의 부흥을 이끌고 싶습니다”어업을 시작하다박판규(61세) 권관리어촌계장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나 이주하면서 평택시 현덕면 권관1리에 정착했다.“평택에 정착한 뒤 아버지는 어업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평택호방조제 건설 직후였죠. 주말이나 방학이면 뱃일을 돕곤 했습니다”중학교 졸업 후 인천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한때 교육자를 꿈꿨지만,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며 건강이 나빠지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평택으로 내려와 군 생활을 마쳤다.전역 후 1986년 한라건설에 입사한 뒤에는 평택시 포승읍 만호
“평택박물관 건립 사업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학생운동에 투신하다정용훈(52세) 평택시 문화예술과 박물관팀장은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경계와도 같은 평택 신장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어린 시절 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굉장히 많이 다녔습니다. 신장동 곳곳에서 거주했죠. 그래서 미군문화가 상존한 신장동 특유의 분위기를 아주 잘 알고 있어요”성적이 우수하고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모범생이었던 정용훈 팀장은 고교 시절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기도 했다.“문과, 이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는 중증도색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