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3월 15일낮밤 없는 까마귀 소리에 귀 아파갑오·병술년 처럼 큰 일 날까 우려 “수일 전에 경기도 관내의 진위(振威)와 수원(水原)과 기타 각 군으로 경유하여 돌아온 모씨의 말을 듣건대, 요즈음 전기 지방으로는 까마귀가 어찌 많이 떼를 모아가지고 다니며 지저귀는지 귀가 아파서 견디기 어려운 중에 더욱이 낮에 많이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쉬이
1935년 11월 12일떠돌아다니다가 절도 행각열차식당 남은 빵으로 연명 “十二일 오전 十二시경 서대문경찰서 형사실에서 취조를 받고 있는 소년의 애소 한 막이 있다. 그는 진위군 서남면 군문리(振威郡 西南面 軍門里) 김수천(金壽千, 一五)이라는 소년이다. 물론 차림차림이 거지의 모양이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종합하여 보면, 이것도 차디찬 이 세상의 한구석에서
1932년 6월 27일아사지경 주민 구제하려 은행 대부주선자 이자 문제로 사기횡령죄 고발 “송주헌(宋柱憲)씨는 진위군 고덕면 해창리(振威郡 古德面 海倉里)에서 살면서 다년 그 동리 구장(區長)으로 있을 때에 대정 八년경 조선 전도가 한발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흉년이었던 까닭에 해창리(海倉里) 일백二十여 호는 모두 아사지경이었다고 한다. 구장 송주헌(區長
1929년 1월 31일김포 사기꾼, 진위 젊은 청년 속여취직 빌미 감언이설, 8원 20전 편취 “자칭 김포군 월곳면 박천리(金浦郡 月串面 朴川里)에 산다는 이기룡(李基龍, 二六)은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면서 농촌 우민을 속여 금전을 편취한다는데, 일전에 진위군 병남면 지제리(振威郡 丙南面 芝制里) 이덕상(李德相, 二○)의 집에 가서 동리 이흥삼(李興相, 一九)
1929년 2월 6일두 노승 시주쌀 더 받아먹으려고강도에 강탈 당했다고 가짜 신고 “지난 六日 午後 열한 時頃에 振威郡 古德面 防築里 八 修德庵이라는 절에 僧侶 두 名이 强盜가 侵入하여 金淸雲(六七)과 同 崔重鎬(六七)의 두 名을 結縛하고 棍棒으로 毆打하여 中傷을 시켜 놓고 祈禱米로 施主하여 온 白米 其他 衣服 等 時價 約 十餘圓 어치를 强奪逃走하였다고 前
1914년 11월 22일불륜 두 남녀, 남편 죽이기로 작정술에 양잿물 타서 먹인 후 목 졸라 “경기도 진위군 청북면 율리(振威郡 靑北面 栗里) 사는 장치삼(張致三)의 처 정성녀(鄭姓女) 서른 살 되는 계집은 작년 섣달부터 그 동리 사는 김교필(金敎弼) 스물일곱 살 된 자와 서로 정을 농한 후 두 사람의 뜻은 점점 친밀하여 감에 필경 그 남편을 죽여 없애고
1913년 3월 27일두 아들 두고도 과부라고 재혼생활고 때문이지만 남편이 고소 “京城 中部 長通坊 中谷 六十九統 一戶 居住 鄭泰善의 妻 當時 京畿道 振威郡 古頭面 松湖里 一統 一戶 孫春心(四) 方에 同居하는 金姓女(二八)는 距今 六年前에 鄭泰善의 妻가 되어 本年에 六歲와 三歲되는 男兒 二人까지 生育하면서 鄭某가 每日 僅少한 勞銀으로 生活이 困難함을 因하여
1913년 7월 3일고학으로 법원양성소 최우등변호사로 두각, 일제에 협력 “距今 六年前에 一個 妙齡法官이 咸興地方裁判所에 現出되어 不過 半年間에 成績이 卓越함으로 卽時 平壤地方裁判所로 榮轉돼 在職 四年間에 忠厚勤實한 天資와 明析英敏한 頭腦로 用法에 公明하고 處事에 正大해 官民間 大歡迎을 受하여 遂히 朝鮮人 判事界에 第一位를 占하였고, 客年 初秋에 京城覆審法
1913년 5월 20일잡기로 돈을 빼앗으려다 실패오히려 돈 잃고 판돈 강탈 도주 “경기도 진위군 군내면 서문리 이통 이호 유등식(京畿道 振威郡 郡內面 西門里 二,二 柳東植) 삼십칠세 자와 동면 만촌리 이통 구호 한기조(同面 晩村里 二,九 韓基祚) 삼십 칠세된 자와 동면 교촌리 일통 구호 윤덕환(同面 校村里 一統九戶 尹德煥) 삼십삼세된 자의 삼명은 동면 만촌
1908년 5월 20일19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군수·이범창에 보내 항일의식 고취 “세상에 불쌍하고 가련한 자는 귀먹고 눈 어두운 자 두 가지 병신이로다. 도적이 앞에 앉아 쳐 죽이자 하여도 등지 못하고 앞길에 함정을 파 놓았으나 보지 못하는 고로 필경 사망하는 지경에 이를 터이니, 누가 불쌍타 하지 아니 하리요. 오호라 우리 한국에 귀 밝고 눈 밝은
1923년 11월 26일이상적 농촌으로 유명한 도일리원주 원씨 마을, 가족처럼 지내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도일리 振威郡 松炭面 道日里는 현재 호수가 약 일백 사십호 가량 되는 동리로 원래 원씨元氏 일족과 그 관계자의 단출한 촌락인데, 지금으로 약 일백 이십년 전부터 한 동리가 한 가족 같이 원만히 지내오며, 또 조선의 폐풍은 어디까지든지 개선함에 노력해
1921년 7월 18일황무지 약 25만 5000평 개간첫해 4개월 생활비 50원 지원 “仝氏는 性本溫良하고 堅忍不㧞의 氣槪가 多하여 明治三九年에 振威郡 西面 所在 荒蕪地 百七十町步를 購入하여 明治 四十三年 末에 八十五町步의 開墾을 了하고 二個年間 自作을 試한 後 小作主義로 改하였으나 또 스스로 小作人에게 模範을 指導監督한 結果 目下 小作人이 百
1921년 7월 18일고덕면 동고리 다리 사체 떠올라불의 관계 들통 나자 집 나와 자살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동고리 다리(京畿道 振威郡 古德面 東古里 橋) 근처에서 칠월 십팔일 오후 아홉시에 묘령의 여자 시체가 떠오른 것을 발견하였다는 급보를 접하고 평택경찰서에서는 즉시 계관이 출장해 검시한 결과 잘못함을 뉘우치고 빠져죽은 듯한데, 그 여자는 진위군 고덕
1923년 1월 15일권총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일설, 사기횡령 양민 협박 “요사이 종로경찰서 사법계에서는 경기도 진위(京畿道 振威)경찰서와 연락해 대활동을 개시한 결과 시내 모처에 잠복해 있는 진위 병남면 합정리(振威 丙南面 蛤井里) 김정한(金正漢, 26) 김정태(金正台, 41) 등의 두 형제를 체포하여 재작일 진위서로 압송하였는데, 그 내용은 절대 비밀에
1927년 12월 16일어머니, 아버지 돈·재물 빼돌려결혼한 딸에게 전달, 경찰 체포 “수원군 정남면 음양리(水原郡 正南面陰陽里) 김성녀(金姓女, 42)는 지난 유월 이십칠일경에 자기의 본가 아버지 되는 김학현(金鶴鉉, 72)의 현금 일천육백오십원과 기타의 삼백사십오원 합계 일천구백구십오원을 절취하여 가지고 자기의 딸이 시집을 가서 사는 진위군 포승면 신영
1921년 12월 31일채무 재산 압수 후, 기차에 치여의사·경관, 타살 의심 채무자 취조 “경기도 안성읍내(安城邑內)에 본적을 두고 진위군 서면 신대리(振威郡 西面 新垈里)에 사는 홍진표(洪辰杓, 32)는 여간한 재산을 가지고 그 동리 사람에게 대금영업을 하던 바, 얼마 전에 그 채무자 수십 명에게 환부를 심히 독촉하였으나 용이히 환보치 아니하므로 홍진표
1935년 11월 17일며느리가 시키지 않은 일 해밀쳤는데 머리 부딪혀 뇌일혈 “진위군 송탄면 가재리(振威郡 松炭面 佳才里) 안영식(安英植)은 지난 十七일 오후 七시경에 자기 며느리로 있는 박금산(朴錦山, 9)을 시키지 않는 감자를 캔다고 떠다 민 것이 땅에 머리를 부딪치고 넘어져 일어나지 불과 두 시간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지난 十九일 수원도립병원 외과
1937년 7월 28일집에 안 들어온 아내 유인 오해친구 아내 구타, 처가에도 폭행 “경기도 오산시장 전중병원(田中病院)에는 지난 二十八일에 구타 중상을 당한 두 여자가 입원을 하였는데, 그 자세한 바는 다음과 같다. 진위군 서탄면 회화리 이원봉(西炭面 檜花里 李元奉, 三七)의 처 김메리(一七)는 지난 二十五일 무단히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으므로 평소에 자
1917년 9월 22일결혼 8~9개월 후 변심 아내 질책집 나간 아내 찾으려 급행열차 타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장안리 김연태(京畿道 振威郡 松炭面 長安里 金連泰, 26)는 본년 이월에 원성녀(元姓女, 26)와 결혼하여 팔구삭 동안을 아무 험절 없이 살아오던 바, 뜻밖에 본월 초순경부터 원성녀의 마음이 우연히 변하기 시작하여 행동이 전과 다른 눈치를 짐작한
1935년 10월 24일곡물업 박용용 4년 전 축첩이제 실증 난다고 매일 구타 “진위군 평택 비전리(振威郡 平澤 碑前里)에서 곡물업을 하는 박용용(朴容容=가명)은 지금으로부터 四년 전에 기생(妓生)으로 있던 현명옥(玄明玉)을 축첩하여 이래 원만히 살아오던 바, 소생까지 남녀 간 둘이나 낳았는데, 요사이 와서는 실증이 나서 매일 전기 첩 현명옥을 구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