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시장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미술에 심취하다안중시장 수예가게 오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권혜정(51세) 안중시장상인회장은 안중시장과 함께 성장했다.그의 어머니는 안중시장에서 수예점을 운영하며 대식구의 생활비를 감당했다.“7~80년대에는 수예점에 손님이 매우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엔 아침마다 일을 돕다가 지각하곤 했죠”어머니는 오 남매 모두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지원했지만, 권혜정 회장은 피아노에 소질이 없었다.“매번 피아노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안
“25현 가야금이 잘 계승될 수 있도록 지켜나가고 싶습니다”가야금을 배우다숙명여자대학교 특수대학원 전통예술학과에서 전통음악전공 초대교수로 활동 중인 김계옥(66세) 교수는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출신으로 지난 2007년 귀화한 25현 가야금 연주자이다.중국 전통 관악기인 ‘디즈’는 물론, 바이올린과 아코디언까지 다양한 악기를 배운 김계옥 교수는 중학교 졸업 후 연변예술학원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한국 전통악기 가야금을 접했다.“연변예술학원은 조선족 학생을 위한 예술학교입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전승한다는 취지로 전통악기를 가르쳤죠.
“평택을 위한 공통된 의제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농촌의 실상을 깨닫다김덕일(59세) 평택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경기도 수원에서 성장했다.“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등학교 모두 수원에서 다녔습니다. 제가 둘째인데, 맏이인 형만 고향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죠”부모님이 운영하는 고물상에는 항상 사람과 책이 넘쳐났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아주 좋은 놀이터가 됐고, 고물을 수집해 생계를 이어가던 상이군경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김덕일 회장은 중·고교 시절
“호박꽃초롱을 전통문화체험 공간이자 다양한 작가를 위한 갤러리로 조성하고 싶습니다” 손재주가 뛰어난 소녀한은숙(57세) 호박꽃초롱 대표는 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 기슭 한 시골마을 목장집 딸로 태어났다.그는 일찍이 마을 이장이었던 삼촌과 잔치가 열릴 때면 음식을 도맡아 대모代母 역할을 자처한 어머니를 도우며 봉사하는 자세를 배웠다.“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과 후원자를 연계하는 복지 사업이 있었는데, 삼촌을 도와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후원자들이 마을을 방문하면 잔치를 열어 음식을 대접하셨죠. 이때 후원자들을
“모든 노동자가 평등하게 법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다한상균(61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도위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작은 시골마을에서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한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저는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중에서도 고전을 좋아했죠”한상균 지도위원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일찍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대학 진학에 미련
“라이온스의 명예를 걸고 지역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싶습니다” 기술을 배우다김의겸(60세) 국제라이온스협회 354-B지구 2020-2021 총재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하저리 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그가 태어난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깡촌’이었다.“초등학교 때까지 호롱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마을을 지나는 버스도 하루에 딱 두 대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차비가 없어 학교까지 10리 길을 걸어 다녔죠”김의겸 총재의 부모님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멀리 수원까지 유학 보내는 일을 마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기여하며 불교의 자비로움과 슬기로움을 알리고 싶습니다” 장남으로서 책임감무상법현(65세) 스님은 천혜보육원에 잠시 머물게 되면서 평택과 처음 인연이 닿았다.돈을 벌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에서 올라온 부모님은 그를 보육원에 맡긴 채 일해야 했고, 결국 평택에 터전을 꾸렸다.그는 어려서부터 장남으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그래서일까. 무상법현 스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평택군청에 발령받기도 했다.하지만 그는 임용을 포기하고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
“평택시민에게 멋진 숲과 정원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정치외교를 전공하다평택 서정리역 인근에서 태어난 이종영(78세) 녹색평택그린트러스트 회장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일찍이 상경해 서울에서 성장했다.“현재 서정리역 앞 축협 지점 부지에 제가 태어난 집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교통부 철도국 공무원으로 전국 순환근무를 했기에 지방에서 홀로 일하셨고, 저는 어머니, 누님과 함께 서울에 정착했죠”이종영 회장은 고교 진학 후 유달영 교수의 저서 를 접한 뒤 농업대학 진학을 꿈꿨다.“아버지는 본인을 따라 법학을 전공하길
“조합원 모두가 화합하는 행복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험난했던 성장기오인환(67세) 평택원예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은 요즘 세대는 겪기 힘든, 그야말로 모진 풍파를 겪으며 성장했다.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했던 그는 한때 법관을 꿈꾸기도 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장남으로서 집안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이모님이 운영하는 정미소에서 일했습니다. 사실 중학교도 제 은사이신 이갑종 선생님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알아봐 주신 덕분에 진학할 수 있었죠”그는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평택예총이 회원단체와 함께 화합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악에 매료되다서강호(57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평택지회장은 뚝 너머, 지금의 원평동 일대에서 성장했다.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상서재마을, 지금의 법원 앞으로 터전을 옮긴 뒤에도 전학을 가지 않고 한 시간 거리의 평택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다.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우연히 시가행진하는 군악대 모습을 보고 타악기에 매료됐다.“초등학교 6학년 때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단원이 등하교 교통정리를 도맡았는데, 이때 거리를 행진하는
“평택시로컬푸드재단과 평택시로컬푸드센터가 농업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겠습니다” 농업을 사랑하다이종한(55세) 평택시로컬푸드센터장은 어려서부터 근면·성실한 부모님을 보고 자라며 농업인의 꿈을 키웠다.증조부 때 집성촌인 현덕면 권관리를 떠나 인광리에 터전을 잡은 그의 집안은 대대로 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왔다.“대대로 농사를 지어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생활했습니다. 삼형제 중 장남인 저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여물을 주고 아버지 일을 도왔죠. 졸업식 당일에도 놀지 못하고 농사일을 도왔습니다”어려서부터 농업에
“평택농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생활지도사가 되다김인숙(54세) 평택시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과장의 고향은 평택시와 자매결연도시 전라남도 신안군이다.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초도는 신안군 1004개의 섬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면 소재지이지만, 육지로 연결된 다리가 없어 40여 분간 배를 타고 가야만 접근할 수 있다.사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김인숙 과장은 매사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었다.“어려서부터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죠. 저희 때는 직접 대학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전환점김진숙(55세) 더인재가복지센터장은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어린 시절 수줍음 많은 소녀였던 그는 중학교 시절 우연한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성격이 변화했다.“기본적인 성향은 내성적이었습니다. 한데 중학교 시절 소풍가서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춘 일을 계기로 많은 변화가 있었죠. 이후 체육대회 응원단장을 맡을 만큼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됐습니다”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단순히 친구를 따라간 것이었지만, 교회는 인생의 또
“평택농민회가 지속해서 지역 농민을 대변할 수 있도록 기반을 세울 계획입니다”학생운동에 투신하다임흥락(54세) 평택농민회장은 탄광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강원도 태백시의 중심 황지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아버지는 철도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습니다. 빠듯한 형편에도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으셨고, 그 결과 저희 삼형제 모두 강릉에서 고교 생활을 했죠”고교 시절 임흥락 회장의 가장 큰 목표는 소위 ‘인서울’이었다.삼형제 모두 공부로는 태백에서 으뜸가는 실력을 자랑했기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삼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세종대학교
“평택시 국궁 저변 확대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평택에 정착하다경기도 포천시의 한 산골마을에서 성장한 김기태(66세) 평택시궁도협회장은 병환으로 고생한 아버지를 대신해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3남 1녀 중 장남인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1975년 사촌누님이 사는 평택으로 내려왔다.김기태 회장은 하루빨리 군에 다녀와 가족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일찍이 입대했지만, 매형의 사업이 부도를 맞는 바람에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군에 다녀오니 바로 아래 동생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장남으로서
“상담·미술 활동을 기반으로 이웃에 베풀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평택에 정착하다김래현(62세) 예술심리상담연구소장은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의 한 산골 마을에서 성장했다.지역에서 명망 있는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는,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에 큰 걱정이 없었다.“할아버지께서는 서당을 운영하며 한학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는 농협 조합장과 학교 육성회장을, 어머니는 부녀회장을 맡으셨죠. 텔레비전이 있는 집도 저희 집이 동네에서 유일했습니다”김래현 소장은 중학교 졸업 후 어쩔 수 없이 유학길에 올라야 했다.“고향마을에 고등학교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평택에 정착하다강명임(만 65세) 베리베리다보농원 대표는 소래포구와 가까운 인천 남동구 고잔동에서 성장했다.그는 칠 남매 중 다섯째였지만, 일찍이 독립한 언니, 오빠들을 대신해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보살피는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고, 어머니는 갯벌에 나가 조개를 잡으셨습니다. 새벽같이 일을 나가는 부모님을 대신해 제가 아침밥상을 차리고 소여물을 주곤 했죠”강명임 대표는 1년 늦게 입학해 같은 학년이었던 남동생에게 고교 진학을 양보하고 일찍이 취업 전선에
“지역사회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고 싶습니다”소녀, 일찍이 철들다조승자(60세) 자치리더십센터장은 경기도 하남시에서 성장했다.연탄을 빌려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 그는 일찍이 철이 들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힘든 환경 속에 교회는 어린 소녀에게 희망이 되었다.“학교에 가기 전부터 이미 교회에 나갔습니다. 바쁜 부모님 대신 교회가 많은 가르침을 주었죠. 교회는 성장하는 제게 길라잡이가 되었습니다”조승자 센터장은 어려운 형편에도 학업에 대한 열의가 강했고, 교회 전도사의 도움을 받아 야간학교에 진학했다.“전도사님이 장학금을
“평택시민이 더욱 다양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화가를 꿈꾸다배춘효(49세) 작가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인근 아랫잔다리마을에서 칠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송탄지역에서 성장했다.“아버지는 6.25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으셨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는 큰 사기를 당해 가세가 기울었고, 고향마을을 떠나 복창동 철길 옆 무허가 건물에서 살 수밖에 없었죠”일찍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형제들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배춘효 작가는 어린 시절 미술에 두각을 보였다.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우선인
온양방씨 집성촌 ‘팽성읍 원정리’방효필(69세) 청암문학작가협회 이사장은 온양방씨 집성촌이 위치한 평택시 팽성읍 원정리에서 나고 자랐다.온양방씨 일가는 조선 초기 팽성읍 원정리에 자리 잡은 뒤 무려 5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터전을 지키고 있다.“팽성읍 원정리는 역사가 깊은 마을입니다. 마을엔 정조대왕이 행차할 당시 말이 물을 마시고 갔던 ‘마정’이라는 우물이 있죠. 또한 430년 된 느티나무와 온방방씨의 큰 어른이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선봉장으로 노량해전에 나서 전사하신 방덕룡 장군과 그 후손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