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이뤄낸 것 하나는 있어야좋은 먹거리, 제값에 사는 것이 정답 “로컬 푸드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기초로 합니다. 평택에서 생산된 농산물들 대부분은 가락동 시장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판매되는 것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손을 거친 먹거리들은 이미 생기를 잃고 맛과 영양 면에서 처음과 비교하기 어렵게 됩니다. 결국
초등학교도 못 다녔던 시절 고학으로 대학까지목말랐던 배움, 고향에서 후배들 가르치며 이뤄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우리나라는 60~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먹고사는 일이 힘들었어도 자식을 가르치고자 했던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식지 않았다. 그런 교육열이 외국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현재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해도 과언은 아
‘쌍용자동차’를 이야기 하려면 ‘콧수염’을 심벌마크로 격동의 한 시대를 넘은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 회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54년 창설된 ‘하동환자동차’는 소방차나 건설장비, 레미콘 차, 버스 등 특수차량 제작이 주력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한 지혜로운 젊은 청년 하동환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드럼통을 일일이 두드려 펴
떠나는 이들에게 한 번 더 사랑을 전해자신의 내면이 더 성숙해지는 호스피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부자연스러운 연명을 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치료를 하면서 심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도움을 주어 인간적인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목사 남편과 시작한 호스피스“처음엔 목사인 남편과 함께 지역을 위한 봉사를
알려진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화폐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중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자신이 살던 세상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병역의무와 같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되어진 의무와 함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자발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
신뢰와 기본 지켜온 농민출신 4선 시의원평택의 미래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아가야 민의를 대변하는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주민 신뢰와 자신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 출발했던 농민의 자리를 잊지 않고 평택시의회 제2~5대까지 16년간 시의원이라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배연서 제5대 의장은 항상 자신의 근본을 잊지
한국에 온지도 어느덧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산 설고 물 설은 낯선 땅에서 “행복하고 좋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한국에 대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만 듣고 민주주의와 자유, 삶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하는 다른 한편의 무거운 책임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왔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가고 책임져야
아이 가슴에 묻었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어혼자 헤쳐 나가도 현실 직시하고 당당해야 우리가 그저 무심히 보게 되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그 많은 사연 중에서도 특히 인간으로서의 감내해야만 했을 모진 고통의 흔적을 우연히 엿보게 될 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을
작지만 소중한 대안 만들고자 노력 할 터부족함 많은 삶, 공인으로서는 최선 다해“같은 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저 또한 학생운동을 거치면서 잘못된 사회를 바꿔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대적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평택지부 실무간사를 맡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돼 시민운동가의 길
경로당은 노인들의 행복집합소가 되어야남은 인생은 봉사하는 행복전도사 될 터 노인문제가 국가가 책임지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만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수명의 증가 만큼 삶의 기간도 연장되었고 그에 따라 노인들의 삶의 질에 관한 얘기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평택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3만 명 중 4만 5000여명으로 10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번 그리고 종일 세워두었다가 저녁에 퇴근할 때 한 번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가용차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을 갖고 싶어 하면서 우리네 공동체 의식은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죽자 사자 돈에 매달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어디 가고 돈만
연봉 8천만 원 대기업 간부, 실업자로 전락말단 공무원이지만 봉사하는 데 보람 느껴 ‘도전’이라는 말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고 희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걱정은 없겠지만 그에 따른 희망도 없다. 정
예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되어야 하는 것어릴 때부터 사람의 도리 다하는 禮 가르쳐야공자는 논어에서 ‘입어례(立於禮)’라는 말을 강조하며 ‘예로써 바로 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성현의 옛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점이 무엇일까를 잠시만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찾아질 수 있다. 혼란스러운 사회적 현상들의 단초는 바로 ‘예’를 잃어가
어느덧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온 나날들이 3년이나 지나갔다. 그동안 정신없이 사는데 급급하여 바쁜 삶을 뒤돌아 볼 사이도 없었던 것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보는 계기로 지난 세월을 잠시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의 모습은 참 촌스럽고 어수룩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을 꿈꾸면서 희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노래하며 마음의 짐 덜고 사회와 유대 맺어장애인과 노인들 위해 봉사하는 삶 살고파 한 시대를 풍미하는 노래에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서민들의 꿈과 사랑과 애환이 담겨있다. 때문에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현재의 마음을 달래고 그러는 가운데 노래 가사와 자신의 처지가 딱 맞아 떨어질 땐 급기야 노래를 부르다 목 놓아 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노래가 가지는 치유
“역사교사도 고장에 무지한 부끄러움”“보는 것이 아닌 행하는 교육이 중요” “요즘 아이들의 정보 습득력은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여진 정보들이 여과 없이 아이들 뇌리에 새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은혜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일 교사는 요즘 아이들을 마땅찮게 말하는 기성세대들을 볼 때마다 맘 한구석이 무거워
대학 졸업 후 농촌에 내려와 뿌리내려김준 선생·고건 국무총리와 인연 맺어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노래로 한때 전국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던 새마을운동은 어떤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나 각 마을을 단합하게 만들고 잘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재조명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뜻을 지닌 새마을운동은 1970년 ‘새마을가꾸
의식전환김해규 선생님 말씀 모두 다 타당성 있는 제안입니다. 그러나 시설과 제도에 대한 개선에 앞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봅니다.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이나 박물관 한두 개가 들어선다고 그 지역의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놀이문화를 위한 시설을 늘린다고 ‘지역사회 문화’가 향상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껴장관상은 봉사 더 잘하라고 주는 상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을 낮 삼아 공부하는 학생들로 넘쳐나는 요즘, 고등학생 임에도 불구하고 봉사동아리 회장직을 맡아 동아리 회원들을 이끌며 많
문화, 시민의 삶을 풍족케 하는 수단끼 있는 아이들, 평택의 소중한 자산 “입시 공부를 위해 들어간 절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형님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 형님이 그러더군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다 그만두고 영화배우나 하련다’ 정말 그저 스쳐지나가듯 들은 그 말 한마디가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 저를 연극계로 이끌었죠”4수 끝에 들어간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