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이규남 서각장 기능보유자는전등사 팔만대장경판에 감동서각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해2004년 道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됐다 이규남, 1950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용화리에서 출생고교 2학년 때 강화도 전등사 팔만대장경판을 보고 큰 감동1984년부터 3년간 각자장인 오옥진에게 본격적으로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김용래 평택농악 명인은13살 때 두레패 사미로 입문해남사당과 웃다리 풍물패로 활동하다2000년 평택농악 예능보유자가 됐다 김용래, 1939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서 출생인척의 권유로 용곡마을 두레패 사미로 웃다리농악에 입문15살 때 최은창과 인연, 평택을 비롯 인근 풍물꾼들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이돌천 평택농악 명인은12살 때 풍물 소리에 혼이 빠져유랑하는 남사당에서 활동해 오다1985년 평택농악 예능보유자가 됐다 이돌천, 1919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서 출생천안 쌍용동농악대에서 풍물을 배워 평택·천안 걸립패 활동35살 때 평택농악 최은창과 운명적인 첫 만남, 걸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최은창 평택농악 명인은16살 때 두레패 상쇠로 시작평택농악 예능보유자가 됐으며평생을 웃다리농악에 헌신했다 최은창, 1914년 팽성읍 원정리에서 출생 후 평궁리로 이주20여 년간 ‘최은창 행중’이라는 이름 내걸고 유랑건립 활동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평택농악 정립 기여 Ⅲ.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평택농악을 비롯한국가, 시·도 지정 농악이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농악, 2011년 3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제출‘농악’ ‘풍물놀이’ 명칭 혼선, 유네스코에 최종 ‘농악’으로 신청평택농악, 우리나라 농악 가운데 역동성·연희성 가장 뛰어나 Ⅲ. 평택의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특유의 역동성과 연희성의웃다리 평택농악은수많은 해외 초청공연에서세계인의 호평을 받고 있다 평택농악 첫 해외공연은 1992년 일본 가나가와현 순회공연2005년부터 해외공연 본격화, 매년 3~5차례 초청공연 진행평택농악,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 Ⅲ. 평택의 예인藝人3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평택농악은 전국민속예술경연 출전과최은창·이돌천의 예능보유자 지정국가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지정돼웃다리지역 대표농악으로 성장했다 1980년 경기농악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특별상 수상1986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평택농악보존회 지정평택농악발전연구회, 민·관·정 거버넌스로 평택농악 체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평택농악 판굿은빠르고 힘 있는 가락에 맞춰진풀이도 생동감이 넘치고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평택농악, 마을 두레패 성격보다는 전문연희패 성격이 강해‘회초리 사무동’과 ‘칠무동七舞童’ 평택농악의 전설로 남아던질사위·앞뒤곤두·만경창파돛대사위·동거리·곡마단이 백미 Ⅲ. 평택의 예인藝人3. 농악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두레와 걸립의 평택농악은경기·서울·인천·충청권과강원도 영서지역을 포함한웃다리지역 대표 농악이다 평택농악, 전문연희패 걸립굿과 마을두레굿 특징 잘 보여줘팽성읍 출신 최은창, 현재와 같은 평택농악의 편제를 구성평택농악, 이승만생일기념 전국농악경연대회 2년 연속 우승 Ⅲ. 평택의 예인藝人3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송창선은 호적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남사당놀이 호적 보유자로호적은 물론 재담도 뛰어났다 김덕일, 남사당 진위패로 경복궁 중건 때 ‘오위장’ 벼슬 받아송창선宋昌善, 평택 서정리 출신으로 호적잽이·덧뵈기로 명성호적 2개를 한입에 물고 쌍 나팔을 자유자재로 연주한 예인 Ⅲ. 평택의 예인藝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유세기는 전국 5대 놀이패인남사당 진위패를 육성했으며한국농악협회 초대 회장으로시조 교육을 표준화했다 유준홍柳俊弘·유세기柳世基, 남사당 진위패 조직·운영 힘써남사당 진위패, 흥선대원군에게 ‘진위군대도방권농지기’ 받아유세기, 안성경찰서 경부 재직 때 유일하게 남사당 활동 허가 Ⅲ. 평택의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조선후기 5대 남사당패였던남사당진위패男寺黨振威牌는1867년 경복궁 중건 위안잔치에서‘진위군대도방권농지기’를 받았다 사당패 연희, 풍물·버나·살판·어름·덧뵈기·덜미 여섯 마당 구성조선후기 유준홍이 주도한 ‘남사당진위패’는 전국적 명성 얻어평택농악 출신 송창선·최은창·이돌천·김용래 남사당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포승읍을 기반으로 한 지문일가는전통음악의 체계화에 앞장섰으며이충동 동령마을 방문일가는경기시나위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다 지문일가池門一家, 자녀 대부분이 국악 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방문일가方門一家, 방용현과 손자 방돌근이 경기시나위 연주자평택은 지문일가와 방문일가가 경기시나위의 세 본류를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방돌근은 시나위 남양제 명인으로신을 모시는 청배에 뛰어났으며평생 경기도당굿 발굴과 보존전승활동에 공을 들여왔다 방돌근方乭根, 경기시나위 대금 명인 이충마을 방용현의 손자200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교육조교 지정굿판에서는 ‘장단 잘 치고 피리 잘 부는 사람’으로 명성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성금연은 가야금산조 명인으로‘추상’ ‘새가락별곡’을 작곡했고15현가야금으로 즉흥성이 강조된무용음악 작품 ‘춘몽’을 발표했다 성금연成錦鳶, 1938년 어린 나이에 상경·지영희 함께 음악활동196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성금연이 만든 작품, 기존 가야금곡들과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지영희는 시나위 명인이며한국음악 중흥의 도화선이 된국악관현악단 창단의 주역으로한국음악을 꽃피우게 한 인물이다 지영희池瑛熙, 음반 녹음과 방송 활동, 영화음악 작업에도 참여1960년 개교한 국악예술학교는 지영희·박헌봉 등의 큰 업적전통의 본질을 지키면서 국악을 현대화한 것은 지영희의 위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지영희는 세습무가에서 출생경기시나위 명인으로해금·피리 등 기악가 이면서편곡·지휘·무용 등 국악 대가다 지영희池瑛熙, 창작분야 작곡 1세대로 국악 전반 능력의 소유자시나위 안산제安山制, 지영희의 율제篥制로 섬세하고 굴곡이 커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조직, 제1대 악장·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방용현은 경기시나위대금·해금의 명인으로동령제의 창시자이며지영희에게 대금산조를 가르쳤다 방용현方龍鉉, 동령마을 세습무 집안에서 출생·방화준이라 불려굿청에서 대금으로 생계, 서울 진출 늦었으나 예능적 재능 뛰어나젓대시나위로 불리는 대금산조 유명, 지영희·이충선·김광식 가르쳐 Ⅲ. 평택의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경기도 4대 시나위동령·안산·남양·광주제는평택의 음악인들을 통해전승되고 지켜져 왔다 동령제東嶺制, 방용현이 창시자로 경기시나위 육성에 큰 영향안산제安山制, 지영희의 율제篥制로 경기민요처럼 가볍고 경쾌남양제南陽制, 방돌근의 율제篥制로 목튀김과 즉흥적 연주가 특징
[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시나위는 즉흥성에 의해자유로운 연주를 하며무당이 춤을 출 때는춤에 맞추어 연주한다 경기시나위는 지형과 계승자의 기량에 의해 여러 제制로 분파동령제東嶺制-방용현, 남양제南陽制-방돌근 중심 계보 형성안산제安山制-지영희 전승, 평택이 경기시나위 전승의 핵심 Ⅲ. 평택의 예인藝人2. 기악■